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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공파 충헌공종중

소감공파 첨정공 대야광법동종중

판서공파 현풍문중

소감공파호군공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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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채씨 소감공파호군공문중

 

호군군의 행장(護軍君의 行狀)

11세 휘(諱) 중경(仲卿)은, 소감공파조(少監公派祖) 휘(諱) 양생(陽生)의 현손(玄孫)인 통훈대부(通訓大夫) 돈령부 주부공(敦寧府主簿公) 휘(諱) 자침(子沉)의 둘째아들로서 성종 12년(1481) 신축(辛丑)년 정월 초 9일에 출생하여 명종 20년(1565) 을축(乙丑)년 정월 11일에 졸(卒)하셨다. 어머니는 순성군(順成君) 이개(李言豈)의 따님이시다.

 

문과에 급제하고 옥당(玉堂-弘文館), 전랑(銓郞), 사인(舍人), 검상(檢詳)을 지냈으며 실록낭청(實錄郎廳)에서 통정(通政)의 품계로 승진하여 우선 병비(兵批)로 군직(軍職)에 제수되었으나 이비(吏批)가 있기 전에 졸하였다는 족보의 기록이 있는데 공의 성명이 방목(榜目)에서 누락되어 직함(職銜)이 단지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 龍驤衛副護軍)을 지낸 것으로만 기록되어 내려온다. 그러나 아들 집의공-난종(執義公-蘭宗)에 대한 명종 1년(1546) 병오(丙午)년 사마방목(司馬榜目)을 살펴보면, 부친의 직함이 천문예습관(天文隸習官)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체로 이 관직은 영상(領相)이 젊은 문신가운데 재주와 명망이 있는 자를 선별하여 운대(雲臺-관상감)의 직책에 임명하는 것이다. 법전에도 실려 있지만 예전에만 있었고 요즘에는 없는 경우이다. 또 이미 춘관(春官-禮曺)의 정경〔正卿:조선 시대에, 정이품 이상의 벼슬,의정부 참찬, 육조(六曹)의 판서, 한성부 판윤, 홍문관 대제학〕에 추증하였으니 음직(蔭職)을 춘관의 직책으로 추증하지 않는 것은 인사 할 때의 바꿀 수 없는 전범이다.

 

사후(死後)에 현손(玄孫) 15세 호주공(湖洲公) 유후(裕後)의 영달(榮達)로 가선대부 예조참판 겸 양관대제학(嘉善大夫禮曹叅判兼兩館大提學)에 아들 난종(蘭宗)은 예조판서 겸 대제학(禮曹判書兼大提學)에, 손자 경선(慶先)은 이조참판(吏曹叅判)에, 증손(曾孫) 충연(忠衍)은 자헌대부 이조판서(吏曹判書)로 호주공(湖洲公) 유후(裕後)는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증직(贈職)되는 5대 추영(追榮=追贈)의 영광을 누렸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 산3043-1 소재)

< 平康11世 護軍公 諱 仲卿 墓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