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채씨(平康蔡氏) 는 9개(個0 종파(宗派)로 정선공파(靖宣公派) 중암공파(中庵公派) 돈녕공파(敦寧公派) 어사공파(御使公派) 고성군파(固城君派) 소감공파(少監公派) 판서공파(判書公被) 목사공파(牧使公派) 생원공파(生員公派) 등이며 각(各) 파조 (派祖)는 다음과 같다.

 

 ★ 정선공파 파조 (靖宣公派 派祖)

 

◎ 2세 정(楨) 은 고려조의 문신으로 경평공의 큰아들이다. 음보(蔭補=조상의 덕으로 벼슬에 오름)로 누진(累進)하여 원종 원년(元宗 元年)1260년 경신에 우부승선 동4년(1263) 계해년에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 어사대부(御使大夫) 동6년(1265) 을축년에 상서도성 좌복야(尙書都省 左僕耶) 동10년(1269) 기사년에 원종이 몽고에 행차할 때 호종(扈從=수행원)하여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오르고 동11년(1270) 경오년에 강도(江都=강화도)의 유수 재임중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강도를 빠저나와 조정에 보고하여 원종이 사전대처에 대한 공로를 치하하고 난을 평정한후 금자광록대부 삼사태보 중서시랑평장사 평강군(金紫光祿大夫 三師太保 中書侍郞平章事 平康君)에 이르렀고 동12년(1271) 신미년 8월 병진일에 졸 하시다. 시호는 정선(靖宣)이고 원종의 묘정에 배향(廟庭配享=공로있는 신하가 죽었을 때 종묘제사에 부제(祔祭)하는 일)하다. 묘는 선영계하 이고 군산 삼상사에 신위 배향 중이다.

*고려사 열전 권 15~102에 기록되어있다.

 

 

 ★ 중암공파 파조 (中庵公派 派祖)

 

◎ 4세 홍철(洪哲)은 3세 함(諴)의 독자로 고려24대 원종(元宗) 3년(1262)에 출생하여 고려 충열왕때 문과급제(文科及第)하고 응선부록사 통례문지후(膺善府錄事 通禮門祗候)를 거처 장흥부사(長興府使)로 있다가 사임하고 은거 14년간 불교의 철리(哲理)와 음악을 연구 하였다. 1308년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하자 특별 초청하여 사의부정(司醫副正)이 되고 1311년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고 전직지후(前職祗侯)를 연유로 여덟 번 승진하여 정승 지위(政丞 地位)에 올랐으며 1313년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도 다녀왔다. 1314년 충숙왕(忠肅王) 원년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지적경계(地籍境界) 전적(田籍) 세제(稅制)를 제정할 때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오도순방계정사(五道巡訪計定使)가 되었고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승진하여 삼사사(三司使)를 거쳐 찬성사(贊成事)에 올랐다. 1320년 충숙왕 7년에 중대광 평강군(重大匡 平康君)에 봉작되고 1332년 충숙왕 복위 1년에 찬성사가 되었으며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순천군(順天郡)에 개봉(改封)되고 순성보익찬화공신(純誠輔翊贊化功臣)이 되었다. 문장과 기예(技藝)에 뛰어났고 불교경전(佛敎經典)에 밝았으며 국로(國老)8인을 맞아 기영회(耆英會)회 라는 모임을 조직하고 자하동신곡(紫霞洞新曲)을 창작하였는바 현재도 고려악부(高麗樂府)에 전하여 오고 있다. 호는 중암(中菴)이고 군호는 순천군(順天君)이시며 고려28대 충혜왕(忠惠王) 복위 원년(1340)에 졸하시니 향년79세였으며 묘는 순천시 덕흥동에 있다.

*고려사열전 권21~108에 기록이 있다.

 

 

 돈녕공파 파조 (敦寧公派 派祖)

 

◎ 5세 문귀(文貴)는 4세 종린(宗璘=모의 큰아들)의 둘째아들로 고려 말기 돈녕부감 판서(敦寧府監 判書)를 역임 하셨다.

 

 

 ★ 어사공파 파조 (御使公派 派祖)

 

◎ 5세 문빈(文彬)은 4세 종린의 넷째 아들로 조선조 태종(朝鮮朝 太宗)때 돈녕부감(敦寧府監) 재임중 점마어사(點馬御使)가 되어 함흥 도련포(咸興 都連浦)로 말을 구하려 갔다가 구하지 못하자 장계(狀啓=임금에게 서면보고)로 이 사실을 고한바 태종이 크게 노하여 그곳 함흥에서 귀양살이하라는 왕명이 내려 그곳에서 귀양살이하면서 후손이 연면하여 함흥 보청(咸興 甫靑)에 세거 하고있다.

 

 

 ★ 고성군파 파조 (固城君派 派祖)

 

◎ 5세 문무(文懋)는 4세 종서(宗瑞의 둘째아들로서 고려 충선왕때 은광청록대부상서도성 좌복야 중서시랑 평장사 고성군(銀光靑祿大夫 尙書都省 左僕耶 中書侍郞平章事 固城君)에 봉작되었다.

 

 

 ★ 소감공파 파조(少監公派 派祖)

 

◎ 6세 양생(陽生)은 5세 문소(文紹=4세 종린의 셋째아들)의 독자로 고려 공양왕(恭讓王)조 군기감소감(軍器監少監)으로 재임중 고려가 망하자 개성을 떠나 예성강(禮成江)변에서 배를타고 정처없이 수십일을 남하하여 어느 포구에 하선했는데 그곳이 군산(群山)포구였고 그곳에서 가장 험준한곳을 찾아 은둔(隱遁=세상을 피하여 숨다)하셨는데 그곳이 임피(臨陂)상북면(上北面) 향림불사(香林佛舍)였는데 오늘의 군산시 성산면 대명리 향림으로 현재의 삼상사(三相祠) 경내이다.

고려의 충신이고 자손이 번창하여 조선조에서도 평강채씨를 선양한 명상 명신 명장이 거의 소감공의 자손이다.

 

 

 ★ 판서공파 파조(判書公派 派祖)

 

◎ 7세 충경(忠敬)은 6세 수(琇)의 장자로 조선조 초기에 자헌대부 예조판서(資憲大夫 禮曹判書)를 역임하시고 치사후(致仕後) 요산요수(樂山樂水)를 벗삼아 부안상경치(扶安上京峙)아래(지금의 상소산(上蘇山)에 은거(隱居) 하셨다. 이조 태종14년 보안현(保安縣)과 부안현(扶安縣)을 통합할 당시 공의 기지(基地=사시는 집터)를 관에서 동헌(東軒 =현재의 군청)터로 삼고저 둔전(屯田=관아에 딸린땅) 천묘(註: 1묘는 30평)와 공의 기지와 교환하자는 제의가 있었으나 공께서는 나는 많은 전지(田地)가 불필요하다 괴지(槐池=느티나무와 연못)만으로도 족하다 하시고 괴지옆으로 이거하여 정자하나를 짓고 괴정(槐亭)이라 이름하고 공의호(號)도 괴정이라 하시고 여생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셨는데 근래 자손들이 그 연못마저 지키지 못하고 국유화되었다. 공은 고려 우왕(禑王)3년 정사년(1377)에 출생하셨고 조선조 세조(世祖)9년 계미년(1463)에 졸 하시니 향년87세였고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에 장사하였다. 판서공의 재각(齋閣) 공수재(恭修齋)는 부안읍 봉덕리 95-10에 있으며 후손은 전북과 전남에 세거한다.

 

 

 ★ 목사공파 파조(牧使公派 派祖)

 

◎ 7세 지생(智生)은 6세수(琇)의 넷째아들로 조선조 태종때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냈고 세조원년(世祖元年)에 수충위사 동덕좌익공신(輸忠衛社 同德左翼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 생원공파 파조(生員公派 派祖)

 

◎ 7세 충정(忠正)은 6세 수(琇)의 다섯째 아들로 조선조 초기 성균관 생원(成均館 生員)으로 생애(生涯)를 유유자적(悠悠自適)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