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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1세) 송년(松年)은 고려23대 고종조(1214~1259)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삼사태사(三師太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상호군(上護軍) 판이부사(判吏部事)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역임하고 고종 38년 1251년에 졸 하시였는바 시호(諡號: 제왕이 상공 유현에게 공덕을 칭송하여 추증하는 칭호)는 경평(景平) 이시다.
① 고종15년 (1228) 무자9월 병신일에 청색진(淸塞津)의 호장(戶長)이 용주(龍州)호장과 같이 반란을일으켰을 때 병마사로 출정하여 진압 평정하다.
② 고종17년(1230) 경인에 최향(崔珦)의 난에 병마사로 출정하여 이를 평정한후 대장군(大將軍)에 올랐다.
③ 고종18년(1231) 신묘8월에 몽고장군 살례탑(散禮塔)이 평안 황해 경기지방을 침략하였을 때 대장군으로서 북계병마사(北界兵馬使)가 되어 이를 평정하다.
④ 고종23년(1236) 병신 2월 임인일에 추밀원(樞密院) 부사가 되다.
⑤ 고종 38년(1251) 신해 윤10월 갑신일에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 平章事)로 졸하셨다.
(고려사 열전 권15~102와 고려사 세가 권22~24의 고종 15. 17. 18. 23년에 기록이있다.)
묘소는 강원도 평강군 유진면 적전리 금벌동 간좌(江原道 平康郡 楡津面 赤田里 金伐洞 艮坐)에 있으나 국토분단으로 1966년 24세손 판서공파 규홍(奎洪)과 소감공파 규상(奎象)이 주관하여 군산시 성산면 대명리 향림(群山市 聖山面 大明里 香林) 6세 소감공 양생(少監公 陽生)의 재실경내(齋室境內)에 삼상사(三相祠)를 건립하고 시조와 그아들 두분(정선공 禎. 문헌공 華.)과 함께 3위의 신위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18일에 전체 후손들이 모여서 시제를 지내고 있는데 근래에는 평강채씨는 물론이고 인천채씨까지 후손들이 부부동반 참여하여 참사(參祀)후손이 매년 천여명에 이르고 있다.

시조(1세)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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