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시
작성자 채수길
작성일 2012-02-27 (월)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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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4.xxx.30
스승의 빈자리
스승의 빈자리  
가림 없이 시원스런 달과 같은 흉금이셨고
온통 온화한 자리 위의 봄기운과 같으셨네
들보가 꺾이고 산이 무너지니 또 어디서 뵈올까
낙동강 가 슬픈 바람 속에서 눈물 훔치네
 灑然無累胷中月
渾是團和座上春
樑折山頹何處仰
悲風揮淚洛江濱



- 이달우(李達宇, 1629~1691)
〈만장〉
《청천당집(聽天堂集)》  

 
 진사(進士) 이달우(李達宇, 1629~1691)가 그 스승인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1599∼1676)을 애도한 만시(輓詩)의 일부이다.

 첫째 구는, 송(宋)나라 때의 문인 황정견(黃庭堅)이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높은 인품과 탁 트인 흉금을 묘사하면서 “흉금이 시원스럽기가 마치 비가 온 뒤의 맑은 바람과 깨끗한 달과 같다.[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둘째 구는, 송(宋)나라의 학자 주광정(朱光庭)이 대학자인 정호(程顥)를 찾아가 1달 정도 가르침을 받고 돌아온 뒤에 사람들에게 “춘풍 속에서 한 달간 앉아 있었다.[在春風中坐了一月]”라고 그 감동을 전했던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셋째 구는, 공자(孔子)께서 돌아가시기 7일 전에 자신이 죽는 꿈을 꾸고서 아침 일찍 일어나, “태산(泰山)이 무너지려나, 들보[梁木]가 꺾이려나, 철인(哲人)이 시들려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앞의 두 구는 모두 훌륭한 학자의 고매한 인품을 형용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고, 셋째 구는 현인이 죽었을 때의 충격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의지하던 스승을 기리는 마음과 상실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얼마 전에도 광주의 한학자인 송담(松潭) 이백순(李栢淳) 선생께서 타계하셨다. 몇 번 찾아뵐 때마다, 선비다운 온화한 풍모와 깊은 학식에 감모하는 마음이 절로 일어났었는데, 이제는 뵐 수가 없게 되고 보니, 위의 시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빠르게 진보하는 기술 탓에 연륜이 뒷전으로 밀리는 세태 속에서, 그나마 한학이나 국학 분야의 원로들은 소중한 전통 자산으로서 후학들의 존경을 받으셨다. 사전을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을 그 분들에 의지해 보충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분씩 타계하실 때마다 한학 수준이 30년은 후퇴하는 듯하여 마냥 가슴이 허전하다.

 봄을 맞아 산천의 빈자리들은 어김없이 다시 채워지건만, 그 채운 자리만큼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세상사의 또 다른 이치인 것인가?




글쓴이 :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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