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자 홍열
작성일 2021-05-23 (일)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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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xxx.99
저의 뿌리를 알고 싶습니다.

저는 2004년에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으로 정착한 탈북자 평강 채 씨 채00입니다. 오늘 이렇게 종친들의 모임이 찾아보고 내가 어려서부터 늘 생각하던 조상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늦게 남아 찾아 온 저를 욕 많이 해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예로부터 한 나라의 민족사는 매개 사람들의 기곡 많은 가정사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외세에 의해 강요된 민족분단의 기구한 역사의 와중에 북한의 김 씨 왕조가 스탈린이라는 소련독재자에 의해 38선 이북에 설립이 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은 천태만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1392년6월, 태조 이성계를 선두로 전주이씨가 27대에 거쳐 519년의 역사를 이어오던 종묘사직은 결국 일본이라는 강대국에 의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한 반도의 북부지역에 그들의 선산을 지키던 묘주 김일성일가가 지배하는 백두혈통으로 바뀌어 지는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강 채 씨들이 서야할 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오직 김씨 일가가 왼뺨을 치면 오른 뺨을 내대야 하는 죽음보다 더 한 노예의 운명 같은 더럽고 보기 싫은 시궁창이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바라보지 말아야 할 상대성에 완전히 기가 꺾인 평강 채 씨들의 삶은 늘 외줄을 타는 광대처럼 벼랑 끝에서 버둥거려야만 했습니다. 나의 운명 역시 예의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아마 나의 가정사는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대국들의 강권에 날로 멸망해가고 있던 구한말 시기에 조선으로부터 조공을 받아먹던 청나라는 1894년6월,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이에 겁을 먹은 고종은 명성왕후시해사건 이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습니다.

고종은 그곳에서 전쟁으로 패해 약해진 청국을 틈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죠. 하지만 대륙침략의 교두보를 확정할 일본의 패권야망은 이를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1902년1월30일, 영일동맹조약에서 영국을 등에 업고 다시 한 번 짜리러시아세력을 몰아내는 길로 들어선 일제는 드디어 1904년2월8일, 인천과 원산에 강제로 군대를 상륙시켰고 10일, 이 땅에서 또다시 러일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일제는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대한제국의 모든 것을 동원하였으며 수많은 백성들을 강제부역으로 끌어냈습니다.

1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려 두 차례의 전쟁터로 변해버린 한 반도, 결국 러일전쟁도 일본의 승리로 끝났고 1905년11월17일, 대한제국의 외부, 내부, 군부, 학부, 농산 부 대신들인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들은 일본의 강요에 따라 나라의 외교권포기와 통감부설치를 골자로 하는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이 땅은 대외적 주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으며 대내적으로는 일제의 감독기구인 통감부에 의해 주권국가의 기본적인 본질마저 훼손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라의 국권이 완전히 상실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반도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로 되어버린 절체절명의 그 시기, 나의 할아버지 채황친은 1904년7월28일, 중국 심양시 심해구에서 출생하였습니다. 함경도 경원출신인 증조할아버지의 둘째로 할아버지는 10대 초반에 신학을 배운다면서 이름부터 채관우로 고쳤습니다.

할아버지는 중국 길림성 왕청공립제10소학교에서 교원으로 시작해 1927년4월부터 고려공산주의청년협회 만주총국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28년9월, 배초구일대에서 용정주둔 일본영사관 비밀경찰들의 끈질긴 추격을 피해 다니다가 집주변에서 그들의 잠복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체포 당시 할머니는 장남인 나의 큰아버지 채봉환을 임신한지 4개월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밀정에 의해 만주총국의 조직은 일망타진되고 주요인물 몇 명은 경성 서대문형무소에 압송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같이 압송된 할아버지는 3년 형을 선고받고 1931년10월17일, 만기석방 되었습니다. 하지만 살아서 돌아 온 할아버지를 향해 조직은 외면했고 전향자취급에 나섰습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생계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34년5월19일, 저의 아버지 채윤환이 중국 길림성 왕청현 신흥촌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버진 초등학교교육을 시작으로 일제의 패망을 보았고 중졸에 이어 중국의 흑룡강성에 있는 쟈무스설탕제조업체에서 기술자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압록강804킬로미터, 두만강574킬로미터의 방대한 동북지역은 청나라패망 당시 북과 서간도로 불리며 누구의 통제도 없는 무풍지대였습니다. 일본의 침략으로 한지에 나 앉았던 수많은 화전민들이 그곳으로 정든 고향을 등지고 이주했습니다.

일제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퓨이를 1931년9월18일, 이 지역을 점령하고 만주국의 황제로 임명했죠. 하지만 그들의 패망으로 퓨이는 소련군에 체포되고 마오쩌둥의 공산군은 이 지역을 저들의 국가로 통합했습니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대륙에서 쫓겨나는 비운은 겪게 되었습니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김일성이나 마오쩌둥에 의해 친일파와 봉건적 잔재의 허용이 불허된 공산정권하에서 반일을 했어도 살아 돌아 온 사람은 그저 변절자뿐이었습니다.

혁명을 외치며 2천만이 훨씬 넘는 반대파세력을 제거하기에 미쳐 날뛰던 마오쩌둥은 1953년3월5일, 스탈린이 죽자 그 이후 후르쇼부의 강권에 맞서다가 경제적 실패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궁지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1960년 초, 마오쩌둥은 홍위병을 내세워 문화대혁명에 나섰고 코너에서의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마오쩌둥의 혁명만을 외치던 홍위병에게 있어 저의 할아버지의 과거는 타도대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중국한족들이 판을 치는 설탕제조업체에서 민족적 멸시에 울분을 토하던 아버지는 결국 홍위병이라는 가장 위험한 적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려고 북한으로 탈출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당시 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두만강이라는 북중국경을 넘었습니다. 큰 아들은 할아버지에게 남겨두었는데 저의 맏형은 그래서 18세까지 중국에서 초, 중학교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의 아버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 수백만이 북한으로 들어왔습니다.
북한의 두만강북부국경일대의 회령에 정착한 아버지는 슬하에 3명의 아들을 더 낳아 제가 그 5번째 아들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조상의 성지인 경원으로 가서 그곳에 있던 집성촌의 사촌형제들을 만나보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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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시간 상 관계로 다음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다보니 긴 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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